"짐이 가볍기를 기원하지 마라. 등이 더 튼튼해지길 기원하라."

시어도어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영화, 드라마, 컨텐츠 리뷰

흑사병, 세계를 초토화시키다

노란섬 2022. 1. 6. 22:10
728x90

단 한 종류의 세균 때문에 고작 6년 사이에 약 2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코로나 19 2022년 1월 6일 기준 전세계 사망자는 2년 전부터 시작해 총 547만 명이다.)

페스트의 역사부터 현재의 상황까지 알게되면, 현재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와도 유사점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유사점에서 더 나아가 코로나19의 미래까지도 예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목차

    페스트의 발단

    원인 모를 전염병에 쓰러져가는 침략군들

    바야흐로 1346년 우레 같은 소리에 눈을 뜬 카파, 현재 페오도시야의 시민들은 잔인무도한 타타르 전사들이 도시를 포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면전을 벌일 군대가 없었던 탓에 카파 시민들은 도시가 함락되는 건 시간 문제란 걸 알면서도 안에서 적군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상황이 급변한다. 침략군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벽을 둘러싼 타타르 군사들이 점점 많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침략자들이 역사상 최초의 생물학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다시 바뀐다. 적군이 투석기를 사용해 도시 안으로 썩은 시체를 던져 넣기 시작한 것이다.

    성벽 넘어 날아온 시체의 병에 저염된 성벽 안 사람들

    그 결과 정체불명의 질병이 카파 시민들에게 퍼졌고, 희생자는 점차 늘어났다.

    시민들이 이탈리아로 이동한다

    궁지에 몰린 시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배에 올라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들은 몰랐지만, 배에 탄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병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렇게 흑사병은 유럽까지 건너가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킬 기회를 얻는다.

    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5세기에 시작해 15세기에 끝났다. 다시 말하면 1천 년 정도 지속됐다는 듯이다.

    초반에 말했던 카파 이야기는 중세 후기에 있었던 일이다. 1000년 무렵부터 중세 후반기로 보는데 당시 유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요한 계시록의 네 기사

    요한 계시록의 네 기사

    역사가들은 당시에 일어난 일을 성경에 나오는 요한 계시록의 네 기사와 비교하기도 한다.

    첫 번째 기사 (기근)

    

    첫 번째 기사는 기근을 의미한다. 14세기 후반, 기후가 변화하면서 몇 년간 겨울에는 한파가 닥쳤고, 여름에는 강수량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유럽의 식량 생산량이 급감했다. 바로 대기근이 발생한 것이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유럽 인구 가운데 10-25%가 사망한다.

    두 번째 기사 (전쟁)

    두번째 기사는 전쟁이었다. 그 유명한 100년 전쟁이 일어난 것도 그 시대였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랑스와 영국의 군인들은 프랑스 내 영토와 왕좌를 둘러싼 패권 다툼을 이어갔다.

    세 번째 기사 (페스트)

    세번째 기사는 페스트였다. 단순한 병이 아닌 흑사병이었다. 이 병으로 무려 2천만 명 이상이 사망하게 된다.

    중세 후반기는 빈곤과 전쟁, 정치 공작으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은 시대였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멋지고 낭만적인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오히려 끝없는 악몽 같았을 것이다.

    네번째 기사 (죽음)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기사는 죽음이다. 전쟁과 기근, 페스트의 결과는 당연히 죽음이므로, 이에 대해 자연스럽게 마지막 기사가 '죽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무리는 없다.

    당시 사람들의 삶

    당시 농노들의 집

    당시의 삶은 너무나도 고됐다. 농노 대부분은 습하고 어두운 방 한 칸으로 된 오두막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잠도 자고 식량도 보관했다. 가축을 기르기도 했다. 겨울에는 짚을 쌓아 만든 침대 위에서 온 가족이 꼭 붙어 자며 추위를 이겨냈다. 이들은 동이 틀 무렵 일어나 밤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어린 아이들은 보통 5살이 되면 일에 동원됐다.

    위생관리가 안되는 거리

    도시의 좁고 어두운 골목에 사는 이들의 삶은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하수 시설이 없는 탓에 더럽기 그지없었으며 사람들은 오물 위를 지나다니고 그 사이에서 식사를 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는 물론 동물 사체도 널려 있었다. 식사는 주로 빵과 채소, 동물 뼈로 만든 스프였다. 서민에게 고기와 치즈는 너무 비싼 사치품이었기에 썩은 고기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청결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었고, 양치도, 샤워도 거의 안했다. 같은 속옷을 몇년 간 입고있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상 최초로 인구가 줄어들다

    23만 명 가량이 5년 사이에 흑사병으로 사망한다

    페스트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학자들은 1347년부터 1352년 단 5년 사이에 흑사병으로 사망한 유럽인이 1,500-2,300만 명에 달한다고 말한다. 그 외의 기간에 사망한 사람까지 치면 무려 7,500만-2억 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전부터 계속 증가되었던 인구가, 흑사병의 시작으로 최초로 줄어든다

    당시 전 세계 인구는 약 3억 6,500만 명이었으며 인류가 출현한 이래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었는데 흑사병 때문에 사상 최초로 인구가 줄어들었다.

    가래톳 페스트와 폐렴형 페스트

    페스트균

    이것은 페스트균이라는 건데 가성 결핵균이라는 세균이 수천 년에 걸쳐 변이를 거듭한 끝에 등장한 진화한 형태의 세균이다. 이 세균에 감염된 사람에게 주로 가래톳 페스트 형태로 나타난다. 이 병이 더 무서운 건 바로 증상 때문이다. 세균이 몸에 들어가면 바로 열이 나고 오한과 몸살, 두통이 나타난다. 세균이 자리 잡는 신체 부위에 따라 고통은 심화된다. 특정 부위가 혹처럼 불어나는데, 특히 목과 겨드랑이, 사타구니에서 관찰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사과 크기만큼 커지다가 터지면서 안에 가득 차 있던 고름이 밖으로 흘러나온다. 서혜부 림프샘이 부어 생긴 멍울을 가래톳이라고 부르는데 이 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라 그런 병명이 생긴 것이다. (가래톳 페스트)

    가래톳 페스트

    림프샘은 전신에 분포하고 있는 작은 면역기관인데 체내에서 이물질이 감지되면 항체를 만들어내 항원을 공격한다. 가래톳 페스트라는 이름은 이 림프샘과 관련돼 있다. 이 병에 걸리면 림프샘 특히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쪽 림프샘이 점점 불어올라 육안으로 보일 만큼 멍울이 진다. 사람들은 이 멍울을 ‘혹’ 또는 ‘가래톳’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름이 ‘가래톳 페스트’가 된 것이다.

    폐렴형 페스트

    물론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폐렴형 페스트는 호흡기 계통에 영향을 미친다. 폐혈증형 페스트는 세균이 혈류에 침투한 경우를 말한다.

    왜 흑사병이라 부르는가

    그런데 왜 흑사병이라 부를까? 이 병의 또 다른 증상 때문에 중세 시대에 붙은 이름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의 사지 즉, 손과 발에 괴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피부가 까맣게 되면서 피부 조직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병이 딴 병과 다른 취급을 받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며칠 만에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매우 공격적인 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전파 속도가 아주 빨랐다는 것이다.

    세계로 퍼져나가는 페스트

    가래톳 페스트를 유발하는 세균과 벼룩

    가래톳 페스트를 유발하는 세균은 야생 설치류의 벼룩 안에 많이 살고 있다.

    살 곳을 잃은 쥐

    14세기 초, 아시아에서 대규모의 홍수가 발생했을 때 페스트균을 잔뜩 보유한 벼룩이 득실거리는 설치류들은 그간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인간 근처에서 서식하는 곰쥐와 접촉하게 됐다. 곰쥐는 번식 속도가 매우 빠르며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이나 상선에서 살기도 했다.

    당시는 아시아와 유럽의 교역이 활발했던 탓에 페스트균도 아시아에서 유럽 대륙까지 전파됐고 이 균은 벼룩에게 한 번만 물려도 전파될 정도로 전파력이 강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하는 상인들은 무역로를 이용했다. 특히 그 이름도 유명한 실크로드를 많이 이용했다. 상인들은 사치품 뿐만 아니라 벼룩이 기생하는 쥐 수백 마리도 물건과 함께 유럽으로 운반했다. 상선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통해 페스트가 전 세계에 퍼진 것이다.

    1346년에 페스트가 퍼진 곳은 동부 유럽뿐이었지만 1년 후에는 지중해 지역까지 퍼졌고 이후 5년 사이에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독일, 영국을 잠식하고는 마침내 러시아까지 침범한다.

    이 병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덮쳤다. 하지만 병에 걸릴 위험이 가장 높았던 계층이 극빈층이었다는 사실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상류층은 권력의 상징인 성 안에서 즉, 흙바닥과 먼 곳에서 살아서 세균에 노출될 확률이 낮았다.

    페스트를 전파한 건 쥐뿐만이 아니다?

    당시 성도 습하고 어두웠으며 식량 저장소까지 있었기 때문에 쥐들에게는 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연구 결과에서는 병을 옮긴 것이 쥐뿐만은 아니라고 알려준다. 쥐 혼자서 그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질병을 퍼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페스트균은 쥐의 벼룩뿐 아니라 머릿니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위생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에 머릿니가 들끓었을 테고 머릿니가 이동하면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세균이 옮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런던에서 1665-1666년 사이 약 10만 명이 가래톳 페스트에 걸렸다. 런던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였다. 당시 위생이 좋지 않았던 런던에선 몇 년에 걸쳐 산발적으로 페스트가 발생했다. 17세기에 사람들은 도둑이 침입하는 걸 막기 위해 외벽을 쌓았는데 외벽 안에는 흙이 가득했다. 페스트가 번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사망자가 너무 많아 묘지가 가득 찬 탓에 도랑에 시신을 묻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냥 길거리에 시체를 방치하기도 했다.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흑사병 의사

    당시 의사들은 이런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옷은 가죽이었고, 부리처럼 뾰족한 마스크에는 공기를 정화하는 허브 등의 물질들이 들어 있었다. 병자나 사망자가 내뿜는 악취가 병을 전염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복장보다는 의사가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를 더 두려워했다. 이들은 병자의 치료를 맡기려고 시가 고용한 의사였는데 이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 지역에 병이 퍼져 있고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의사가 눈에 안 띄길 바랐다. 이들 의사가 나타난 곳에서는 죽음이 따라다닌다는 뜻이니깐 말이다.

    근데 사실 현장에 나오는 이들은 제대로 진료할 자격이 없는 약간 문제가 있는 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기본적인 임무는 치료가 아닌 사망자와 감염자 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가짜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대중의 공포심을 이용해 사욕을 채운 것이다.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가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그 와중에도 안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뭘까? 이건 가설이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이유는 살아남은 사람 대부분은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설일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가래톳 페스트는 아직까지도 치료 약이 없다. 유럽에서는 이 질병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확실한 약을 개발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병의 전파를 줄여줄 새로운 습관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손을 자주 씻는 등의 아랍식 위생 관리 방법을 따르기도 했다.

    격리

    흑사병을 막는 또 다른 방법은 바다를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었다. 선박마다 쥐가 가득했기 때문에 해안 도시 사람들은 어떤 선박이든 치명적인 병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프랑스에서는 부두에 가까이 온 선박이 40일간 격리를 해야만 정박하도록 허가했다. 배에 병에 걸린 선원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격리’라는 단어는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17세기 런던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마을 격리

    현재 900명 정도 사는 ‘EYAM’ 마을은 과거 가래톳 페스트가 유행했다. 사람이 매일같이 죽어갔다. 전염병이 아주 강한 병이란 걸 안 주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취했다. 바로 마을을 격리한 것이다. 누구도 마을을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

    돌담까지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식량은 필요했기 때문에 동전을 식초에 담갔다가 사용했다. 식초가 살균 작용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초에서 뺀 동전은 이렇게 바위 구멍 안에 넣으면 근처 마을 주민들이 와서는 음식을 놓고 동전을 가져갔다. 일종의 원격 무역인 것이다.


    당시 344명 정도였던 인구는 100명 이하로 줄었다. 이 장소를 걷다보면 페스트로 죽은 사람들의 묘비가 군데군데 많다.

    성당에 기록된, 페스트로 죽어나간 사람들의 명단

    임 마을에서 페스트로 사망한 주민의 이름들이 성당에 기록되어 있다. 수백 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페스트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브라질 전파

    브라질은 1899년 쥐를 가득 태운 채 산투스 항구에 도착한 배가 브라질 땅에 가래톳 페스트를 전파했다. 질병은 점차 퍼져 당시 브라질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까지 번졌다. 이 전염병으로 수백 명이 죽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항구 지역 주민들과 창고 노동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다.

    백신 반란

    1904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래톳 페스트, 천연두, 황열병 등 전염병을 막기 위해 정부가 일반인들에게 강압적으로 백신을 투여했고 시민들이 이에 반발하면서 백신 반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래도 리우의 하수 처리 시설 개선은 가래톳 페스트의 확산을 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사라지지 않은 페스트

    통제는 되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뿌리 뽑힌 건 아니다. 이 세균은 야생 설치류 몸에 사는 세균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을 없앨 수는 없다. 오늘날에도 가래톳 페스트에 감염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보고된 사례는 3천 건이 넘고 그 가운데 약 500명이 사망했다. 병이 유행하던 시대와 비교하면 적은 수다.

    하지만 이 병은 아직 존재한다. 병이 존재한다는 건 또다시 유행병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지구 온난화와 페스트의 관계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페스트 전파의 역학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환경의 변화가 어떤 시나리오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4세기 초, 아시아에 발생했던 호수처럼 말이다.

    페스트는 이제 우리와는 멀어진 전염병이다. 브라질에서 마지막으로 페스트 환자가 보고된 건 2005년이고, 지금은 의학의 발전으로 가래톳 페스트를 조기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기에 항생제를 먹으면 치료도 더 쉽다. 하지만 페스트균은 계속해서 변이하고 있으며 일부 항생제에는 벌써 내성이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위험한 존재다.

    인간 지식의 발전

    이 비극적 사건 덕에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지식이 발전했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한 예로, 흑사병 이후로 사회가 의학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외과의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 커졌고, 병원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과거에는 여행자들의 숙소와 다를 바 없었던 병원이 의료 행위를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아는 병원의 모습과 점차 가까워졌다. 페스트가 퍼지고 한 세기가 지난 후 중세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가는 문이 열렸다. 페스트가 없었다면 세상의 모습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전염병은 과거나 지금이나 무역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염병은 모든 계층이 공평하게 걸리지만,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더욱 전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페스트 당시와도 동일합니다. 밖으로 나가야만 돈을 벌 수 있고, 그래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은 언제나 전염병에 취약한 상태입니다.

    EYAM 마을의 격리 문화를 보면, 현재 배달문화와도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들이 동전을 구멍에 넣고 음식을 가져갔다면, 저희는 배달앱을 통해 미리 결제하고, 문 앞에 배달된 음식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한 때 코로나가 종식되려면, 모두가 면역을 가져야 하고, 면역을 가진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 또한 페스트와도 유사한 생각입니다.

    1900년대 초 백신 반란이 일어난 모습은, 저희가 하고 있는 백신 반란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국민들은 백신에 의구심을 갖고, 맞기를 꺼려합니다. 누군가는 시위를 하고, 인플루언서들은 백신 거부에 대한 의견을 내놓죠. 어떤 나라는 마스크조차 쓰지 않으며, 국가의 요구에 대놓고 불응하기까지 합니다. 이 모습은 100여년 전 그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과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죠.

    현재까지 페스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거 기록을 통해 코로나19의 미래를 생각해본다면 그렇다는 것이죠. 이제는 감기와 같은 가볍게 넘어가는 질병으로 생각하여 인류와 함께 가는 질병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아예 없앨 수는 없다는 거죠. 이에 저 또한 공감하는 편입니다.

    페스트는 글에서 보았듯이 계속 변이해왔습니다. 이는 코로나의 모습과도 동일합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오미크론 등 코로나도 계속해서 변이하고 있습니다.

    페스트도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를 따집니다. 이는 코로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분별한 벌목과 자연 파괴로 박쥐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사라진 박쥐가 이상반응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병을 유발시켰다는 얘기는 지구온난화, 환경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페스트를 통해 인류의 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 지식과 인식은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코로나19 또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것입니다. 사실 현재 상황을 보면 엄청난 발전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비대면으로 인해 많은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은 매우 올라갔고, 그 이전보다도 전염병을 더욱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염병은 계속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연달아서 말이죠. 그럴 때마다 과거의 지식은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재밌고 흥미있는 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