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힘으로 가라' - 책 리뷰
제가 대학교 휴학을 할 시절에 자기계발 도서를 참으로 많이 읽은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 도서를 많이 읽으신 분들은 어느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드실 겁니다.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네." 이런 생각이 드는 시점부터는 자기계발 도서를 읽는 비중을 줄여 나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이 읽었으므로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으라는 내면의 조언일 수 있으니깐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든 이후부터는 자기계발 도서를 읽는 비중을 대폭 줄이고, 경제나 과학기술철학, 고전문학 분야의 책을 읽는 비중을 늘려 나갔습니다.
그래도 자기계발 도서 중 기억에 남는 도서 몇 권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그 중 한 권인 '혼자의 힘으로 가라' 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네요. 저자는 조셉 마셜 3세 (Joseph Marshall III)로 북아메리카 평원 인디언 부족인 라코타 족 출신입니다. 현재는 교사이자 역사가이며 민간전승을 연구하는 민속학자인 동시에 라코타 인디언 부족의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활동 중이네요.
저자는 살아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이 아닌 '지혜'라고 말합니다. 오늘날에 특히 새겨둬야 하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술에 대한 지식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기술이 대체되고 발전하면서 그 지식은 내일이라도 당장 또 다른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되곤 합니다. 하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죠. 지혜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계속 내면 안에 간직되는, 그 안에서 자신을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내적 진동을 향시 일으키는 인간의 엔진같은 것이죠.
책 제목이 '혼자의 힘으로 가라'입니다. 원제는 'Returning to the lakota way' 입니다. 라코타의 방식으로 돌아가 살라는 의미입니다. 생활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으로 말이죠. 지혜를 추구하는 그 삶. 한국으로 번역된 '혼자의 힘으로 가라'는 좋은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협력을 요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혼자의 힘으로 가라'는 것은 쉽사리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유부단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신념과 지혜와 가치관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신념은 이 혼란한 시기 속에서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책은 인디언들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를 다룹니다.
침묵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인디언 중 회색 풀이라는 한 노파가 손자에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침묵하는 때와 장소가 있단다. 침묵은 장소와 같지. 좋은 곳이야. 우리는 그런 곳을 두려워하거나 침묵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그곳에는 네가 원하는 것, 원하는 사람이 모두 있단다. 그곳은 네가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곳이지. 누군가는 그 시간을 외롭다고 느끼고 그런 감정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할미는 그 시간에 네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눠. 네 아버지와도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회색 풀이란 인디언 노파와 그 손자의 대화가 주를 이룹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저희는 침묵을 두려워하곤 합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에 혼자 있다는 것, 친구들과 왁자지껄 수다를 떤 후 집에 돌아와 홀로 조용한 공간에 있는 것, 이 침묵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여깁니다. 저희는 그러한 외로움과 고통스러움을 이겨내기 위해 저희는 현대의 문물인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로 또다시 세상과 연결되려고 합니다. 인터넷 속으로 다시 스스로 연결되어 침묵의 시간을 없애버리죠. 하지만 저희는 침묵에서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사색할 수 있고, 그 침묵 속에서 나쁜 것이나 힘든 일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곳은 자기 자신에게만 속한 곳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회의, 각종 복잡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와 명상 등이 이러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죠.
내면의 침묵은 이렇게 삶의 실체에서 도망쳐 숨는 장소가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자아와 마주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저희는 성장합니다.
노파인 회색 풀은 손자에게 이 말을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침묵을 통해 인생의 폭풍우를 잠재우고 평화를 찾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다가올 거란다."
저희도 이 회색 풀의 지혜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힘과 상식, 깨우침을 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침묵을 알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자 몰락이다."
편견을 버린 늑대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까마귀와 늑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늑대는 '오래 달리는 자'로 불리는데, 주위 모든 동물들이 늑대가 까마귀와 협력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고, 누군가는 비난을 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두 동물의 협력은 큰 시너지를 냅니다.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아도 늑대는 먹잇감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까마귀를 보고 먹잇감을 포획했기 때문에, 혹독한 겨울에도 비교적 쉽게 풍족히 지낼 수 있었죠.
까마귀와 늑대는 노쇠해지고, 햇빛이 쬐는 노곤한 곳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까마귀가 묻습니다.
"오래 전에, 자네는 서로를 돕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 내 질문은 이거야. 왜지?" "나는 궁금했어. 우리가 서로를 도울 수 있는지 말이야.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어. 그래서 남들이 두려워하는 길을 가보기로 한 거야. 그리고 뭔가를 배웠지. 자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 "그렇지."
현대는 편견이 난무합니다. 자기민족중심주의, 교만, 인종차별주의, 동성애혐오증, 남녀갈등 등 각종 편견으로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입니다. 우리는 까마귀와 늑대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관용하는 법입니다. 저자는 관용하는 것이 편견을 없애는 첫 번째 단계라고 강조합니다.
늑대가 주변 동물들의 편견이 있는 시각을 버리고, 관용으로 까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편견 또한 이러한 '관용의 자세'가 있다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익히거나 배운 편견에 갇혀 있다. 약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되었을지라도 자신의 지각에 길들여진 상태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의 말
믿음과 신념
세번째 이야기는 거위와 이크토미의 이야기입니다. 이크토미는 하늘을 나는 거위를 부러워합니다. (집오리는 날지 못하지만, 야생오리는 날 수 있습니다.) 거위가 이크토미에게 대답합니다. "비행에 있어서 믿음은 깃털만큼이나 중요해. 우리는 네게 깃털을 줄 수 있지만 믿음까지 심어줄 수는 없어. 그건 네가 직접 찾아야 하는 거야."
이크토미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비결이 믿음, 즉 신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과 신념은 불행이 닥친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을 인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인생을 헤쳐나가는 동력이 됩니다. 이크토미가 의심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신념 역시 날고 싶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날개와도 같은 것입니다.
무언가를 완전히 믿게 되면 그게 비로소 신념이 됩니다. 하지만 완전히 믿지 못하면 그것은 신념이 되지 못하죠. 각자 자신만의 신념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동력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신념이 없다면, 무언가를 믿어보세요. 그리고 굳건히 믿을 수 있도록 철저히 공부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신념으로 만들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타심과 희생정신
네 번째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희생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굴 지하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동굴 바깥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한 여인은 그대로 지하 세계에 남는다. 동굴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은 전역으로 뻗어져 나갔고, 한 세대가 지난다. 그렇게 지하 세계에 남은 여성은 점점 잊혀져 간다. 하지만 동굴 바깥 세상에서의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혹독한 계절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땅속 세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바깥에 나간 사람 중 극소수는 여전히 지하 세계에 남아 있는 '그곳에 남은 여인'을 만날 수 있었고, 그녀는 어려움에 빠진 동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찢어졌다. 그들이 굶주리며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비통함이 조물주에게 닿았고, 여인은 조물주가 시키는 대로 의식을 행하였고, 그녀의 노랫소리가 우렁찬 울음이 되어 땅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생물체가 만들어졌다. 의식이 끝날 무렵 새로운 생물체는 초원을 가득 채웠다. 사냥꾼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체들을 사냥해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어느 여름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곳에 남은 여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었던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던 노파가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는 동굴에 남아 있던 여인이 동족들의 고통을 전해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전해주었다. 그래서 여인이 자신의 편안함을 버리고 스스로를 조물주에게 바쳐 그 모든 고난을 멈추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라코타인들은 태양을 보고 춤추는 태양춤 의식을 행하는데, 남자들은 부족을 대신해 고통을 감수하고 태양을 바라보며 춤을 춥니다. 이는 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 그 여인의 이타심과 희생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이타심은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 즉 경험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타심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가 이타심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타심이 엄청난 노력이 아닌 작은 호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타인을 위한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개인주의가 되어가며 점점 자기 자신만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동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고전을 보면 자신을 희생한 성인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예수 또한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성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 희생을 경험으로 배우지 못했을 지 모릅니다. 자기 희생을 경험할 수 있는 부모와의 관계가 대표적이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경우 이를 경험하기 어려울 지 모릅니다. 자기 희생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의 기록을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간접 경험은 때로 직접 경험보다 더 강하게 와닿을 때가 있으니 말이죠.
인내
다섯 번째 이야기는 사냥꾼이자 전사로 성장해가는 소년의 성장기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힘들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소년은 꾸준한 속도가 자신의 힘을 유지해준다는 것을 배웁니다.
늑대는 사냥을 할 때 날카로운 감각과 집요함, 인내심으로 유명하다. 늑대가 사냥할 때의 그러한 속성들은 소년이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년은 늑대처럼 날카로운 감각과 집요함, 인내심을 길렀고, 그 결과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사냥꾼이자 전사로 성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인내심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즉각적인 만족이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구글에 손가락 몇 번 튕겨 얻어내는 세상이다. 즉각적으로 정보가 튀어나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더 이상 알아보는 것을 중단하곤 합니다. 빛의 속도를 진화하는 기술은 우리를 유혹하며 모든 것이 빨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정보가 빠르게 내 눈앞에 나타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배달한 물품은 가능하면 오늘 또는 내일 아침까지 와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인내'라는 덕목이 점점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화를 다스릴 수 있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다양한 상황을 평온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인내를 배우지 못한다면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지혜로 가는 열쇠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한 소년이 여정을 하며 얻은 지식의 힘에 대한 것입니다.
'거북이'라 불리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신중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참을성이 많고 사려 깊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다. 거북이는 다른 젊은이들이 소녀에게 구애하려고 혈안일 때에도 멀찌감치 떨어져 노인들 근처에 앉았다.
소년은 여정을 시작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얘기를 나눈다. 여정 중 만난 여우가 말한다. "배우고 아는 것은 힘이 돼. 태양이 낮을 비추는 것처럼 지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을 밝히는 등불과 같아."
소년은 수사슴과도, 방울뱀과도, 곰과도 만나며 지혜를 터득해 나간다. 그러한 여정을 통해 소년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갔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많은 원로가 여정에서 돌아온 거북이를 축하하며, 사람들에게 연설을 한다. "여정이 필요한 이유는 지식이 지혜로 가는 열쇠이고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정 즉 삶을 통해 최대한 많이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행자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려고 합니다. 그의 여정은 쉽지 않았고 노력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그를 '훌륭한 여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지식은 완전한 사회를 형성하는 문화적 측면인 가치, 믿음, 전통, 전통, 관습, 법, 인간 행동 규범 등과 같이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더욱 많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지식들은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을 중요히 여겨야 합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정규교육을 받고 대학을 가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을 스탠다드로 여깁니다. 하지만 가장 위대한 스승은 대학에 있지 안습니다. 인생 그 자체가 가장 위대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도 알려줍니다. 인생은 다채로울수록,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알게 될 수록 더 큰 힘이 생기는 법입니다.
장님의 땅에서는 외눈박이가 왕이다.
평화를 위한 방패
“길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것 뿐이라네.”
“복수의 불꽃은 부당함이나 불평등으로 생겨나거나 억울한 사람의 인식 때문에 생긴다네.”
“지금 하는 선택은 앞으로의 일생을 좌우할걸세. 자네가 현명한 선택을 하든 멍청한 선택을 하든 말이지.”
“쉬운 길은 넓고 여행하기 좋지만 약하고 황량하고 어두워. 힘든 길은 좁고 다니기도 어렵지만 강하고 밝은 곳으로 이어져 있다네. 그러니 가슴과 마음을 살펴서 어느 길로 갈지 선택하게. 쉬운 길을 선택하려면 자네의 길을 가게나.”
“정령들이 자네에게 새로운 목표를 주었네. 그것은 자네가 선택한 힘든 길 위에 놓여 있지. 자네는 방패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그것이 자네가 평화를 찾는 방법이 돼줄 것이네.”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동물들은 전쟁 중이 부족의 영토 중간으로 자리를 옮긴다네. 그곳은 충돌이 없는 지점이지. 그들은 그곳에서 평화를 찾아. 그런 순간이 오면 우리 모두가 그런 장소를 찾게 된다네. 충돌이 없는 곳 말이야. 자네는 그런 곳을 찾는 일부터 시작하게나.”
“전쟁은 영광과 번영의 길이기도 하네. 그렇지만 평화는 강해지는 길이지.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하는지 갈등하는 젊은이를 만난다면 그에게 방패를 만들어주고 자네 이야기를 꼭 들려주게나.”
“돌풍은 전쟁이라는 폭풍을 의미하네. 원은 삶, 균형, 평화를 의미하지. 붉은색은 명예를, 푸른색은 승리를 뜻하네. 전사로서 자네는 반드시 명예를 추구해야 하네. 그것이 곧 승리를 가져다주니까. 가장 위대한 승리는 평화라는 것을 잊지 말게나.”
방패를 만드는 한 장인의 말이다. 그 장인은 훌륭한 제련 기술을 갖고 있지만, 무기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 무기가 자신에게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장인은 평화가 가장 위대한 승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항상 평화를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결정은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것들로 보이고,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은 평화의 말처럼 들립니다. 저자는 국가 간의 평화는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그저 불모가 될 뿐이라고.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면 저자의 말이 공감이 될 것입니다. 순식간에 우크라이나의 무고한 시민들은 죽어나갔고, 수많은 이민자가 생겨났습니다. 부모를 잃은 아이와, 집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를 떠돌아 다닙니다. 인류는 그동안 평화를 추구해 온 것이 맞는가? '평화'는 사탕발린 거짓말인가? 과연 언제 '평화'가 올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각국에서 기술력을 총동원 해 전쟁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첨단의 전쟁 무기를 만드는 것이 국력을 높이고, 국력의 강인함은 적국으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려는 의지를 꺾어버릴 것이라 주장합니다. 위 이야기에서의 장인은 이 상황에서도 평화를 외치며 강한 방패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강한 무기를 만드는 것이 강한 방패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문명사회에 살며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술을 날마다 활용하는 우리는 인간 역시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먼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지금의 편리함이 선조들이 토대를 닦았기 때문임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고전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조망해야 합니다.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문제들이 과거의 일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마나 그리스, 미노스, 페니키아, 페르시아, 고대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하나같이 물질적 권력을 통해 스스로를 강대국으로 주장하다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또다시 물질적 권력을 탐하고, 그 탐욕에 스스로 멸망하려고 합니다.
기술에 점점 의존해가는 우리는 점점 자주, 열정, 도덕, 윤리, 신념, 인내, 용서, 이타심은 잊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인간성인데 말입니다. 이 말은 즉슨, 우리가 점점 인간성을 잊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기술이 만연해지는 이 사회에서 인류에게 지혜를 추구하라고 권합니다. 기술의존적이 되지 말고, 지혜의존적이 되라고 말이다. 확실히 기술은 우리에게 각종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그 편안함에 안주하여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인디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고, 그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매일 기술과 밀접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관철해볼 수 있게 돕기도 합니다.